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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직 신앙고백

벨기 고백, 또는 신앙 고백서로 알려진 이 문서는 미국 개혁교회와 기독교 개혁교회의 교리적 기준 중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 이 고백은 개신교도가 박해를 받던 시기에 생겨났으며, 개혁주의 신앙의 명확한 개요를 제공합니다.

벨직 신앙고백

북미주 개혁교회 (CRC) 와 미국개혁교회( RCA)에서 사용하는 가장 오래된 신앙고백은 벨직신앙고백 (Belgic Confession)이다. 벨직신앙고백은 17 세기 그것의 라틴어 명칭인 “콘페시오 벨지카 (Confessio Belgica)” 로부터 유래되었다. 여기서“벨지카”란 네덜란드의 남쪽과 북쪽을 모두 포함하는 지역을 말하는데, 현재는 네덜란드와 벨기에로 분리되어 있다. 벨직신앙고백의 주 저자인 귀도 드 브레 (Guido de Brès)는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목사였는데 1567 년도에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순교하였다. 16 세기에 네덜란드 교회는 로마 카톨릭 정부로부터 심한 핍박을 받았다. 그러한 잔인한 박해에 항거하기 위하여, 그리고 정부가 고소한 것처럼 개혁주의 신앙을 고백하는 성도들은 반역자가 아니고 오히려 성경이 가르치는 참된 기독교 교리를 고백하는 법을 준수하는 시민들임을 박해자들에게 입증하기 위하여, 1561 년에 드 브레는 본 신앙고백을 작성하였다. 이듬해 한 신앙고백 사본이 필립 2세 왕에게 보내졌다. 이 사본에서 청원자들은 모든 합법적인 국가법에 순응할 준비가 되어있음을 천명한다. 하지만 그들은 본 신앙고백에 기록된 진리를 거부하느니 차라리 “등에 채찍질을 당하고, 칼에 혀를 잘리며, 입에 재갈이 물리고, 온 몸을 불에 태우겠다”라는 서약을 전달하였다.

핍박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본 신앙고백의 긴급한 목적은 곧바로 달성되지 않았다. 생명을 바침으로 신앙을 지킨 수천 명의 순교자들처럼 저자인 드 브레 역시 순교자로서 일생을 마치긴 했으나, 그가 남긴 신앙고백은 오랜 세월동안 지속되어 왔고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벨직신앙고백서를 작성함에 있어서, 저자는 주로 요한 칼빈이 작성해서 두 해 전에 출판한 프랑스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을 참조하였다. 그러나 드 브레의 저작은 단순히 칼빈의 저작을 수정한 것이 아니라 그의 독창적인 것이었다. 이 신앙고백은 1566 년에 안트워프 (Antwerp) 에서 개최된 총회에서 수정되었다. 네덜란드에서 그의 신앙고백은 교회들에 의해 단번에 기꺼이 받아들여졌으며, 16 세기 마지막 30 여년 동안 진행된 총회에서 개혁교회의 규범 교리중 하나로 인준되었다. 1618-19 년에 개최된 돌트총회는 이 신앙고백의 내용은 그대로 둔채 문구만을 다시 한번 수정하였다. 그리고 이 수정된 고백서는 개혁교회의 모든 직분자들이 자신의 고백으로 서명해야만 하는 것으로 삼았다. 벨직신앙고백는 개혁주의 교리를 가장 잘 요약한 고백 중 하나로 알려진다.

본 신앙고백집에서 벨직 신앙고백의 36 조는 두 개의 형태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북미주 개혁교회는 1938 년도와 1985 년도에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관한 부분을 그들의 판단에 따라 좀 더 성경적으로 다듬기 위하여 원래의 신앙고백을 수정하였으며, “재세례파와 다른 무정부주의자들…”을 비난하는 표현을 삭제하기로 결정하였다. 미국개혁교회는 본 신앙고백을 수정하지 않아지만,  1792 년도에 벨직 신앙고백을 세 개의 표준 신앙고백의 하나로 채택하면서 표준 신앙고백과 돌트총회의 교회법에 있는 진술과 새로 독립한 미합중국의 상황을 조화시킨 설명조항도 함께 채택하였다.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다루는 36 조에 관련하여 그 설명조항은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교회의 운영에 관하여 왕의 모든 직접적인 권리 행사와 개입은, 비록 대부분의 유럽국가에서 인정되고 있으나, 우리가 지금 공포하는 헌법에서는 완전히 배제한다.” 제 36 조가 언급하는 재세례파와 다른 그리스도인에 관한 거친 표현에 관하여 미국 개혁교회는 다음과 같은 견해를 채택하였다: “신앙고백을 출판함에 있어서 본 교단은 돌트총회가 채택한 언어, 즉 그 교회가 참되다고 고백한 표현들을 유지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한 결과로 그 때에 사용한 용어들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용어를 유지하면서 본 교단이 현재 알려진 어떠한 기독교단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그렇게 상처를 주었거나 또는 의도하지 않게 다른 사람들을 괴롭혔다면 그로 인해 슬퍼할 것임을 명백히 밝혀둔다.”

제 1 조: 유일하신 하나님

우리 모두는 단일 본질의 영적인 존재이신
하나님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한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시며,
우리가 온전히 이해할 수 없으며,
보이지 아니하시며,
변하지 아니하시며,
무한하시고,
전능하시며,
완전히 지혜로우시며,
공의로우시고,
선하시며,
모든 선함의 끝없는 원천이시다.

제 2 조: 하나님을 아는 방편

우리는 두가지의 방편으로 하나님을 안다:
첫번째 방편은 우주의 창조, 보존과 다스리심을 통해서이다.
우주는 우리 눈앞에
아름다운 책으로
그 안의 모든 크고 작은 창조물들이
글자들과 같아서
우리로 하여금
사도 바울이 로마서 1:20에 언급한 바의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과 같은
보이지않는 하나님의 본질을 묵상하도록 인도한다.
이 모든 것들이 사람으로 확신하게 하는데 충분하여서
변명할 수 없게 한다.
둘째로, 하나님은 그의 거룩한 말씀으로
더 분명하게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알게하신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며
우리의 구원을 위한 것인바
우리 현세의 삶에 유익하다.

제 3 조: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뜻”으로 보내지거나 전달된 것이 아니라,
사도 베드로가 말한대로,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말씀하신 것”이라 고백한다.1
그후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특별한 방법으로,
선지자와 사도들과 같은 자신의 종들에게 명하셔서
계시된 말씀을 기록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손가락으로
율법의 두 판을 기록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기록을
성경이라 부른다.
1 베드로후서 1:21

제 4 조: 성경의 책들

우리는 성경이 구약과 신약으로 구성되며
그 구약과 신약이 정경임에 아무런 논란이 없음을 믿는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정경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구약성경은
모세오경인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 상하와 열왕기 상하;
역대기 상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욥기;
다윗의 시편;
솔로몬의 세 책들인 잠언, 전도서, 아가서;
대선지서들인 이사야, 예례미야,* 에스겔 및 다니엘;
그리고 열두 권의 소 예언자들인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그리고 말라기.
신약성경은
사복음서인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사도행전;
바울의 열네 서신들,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 전후서, 디모데 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와 히브리서;
그리고 다른 사도들이 쓴 일곱의 서신서들, 야고보서, 베드로 전후서, 요한의 세 서신서, 유다서, 그리고 요한 계시록.
* 예레미야서는 예레미야 애가를 포함한다.

제 5 조: 성경의 권위

우리는 오직 이 성경의 책들만을
우리의 신앙을 규정하고, 확립하고, 세우는
거룩한 정경으로 받아들인다.
우리는 성경에 포함된 모든 가르침들을
의심없이 믿는다.
그 이유는 교회가 그렇다고 받아들이고 인정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무엇보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 안에
성경의 가르침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증거하고
그 가르침들 자체가 하나님의 것임을 증거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눈먼자들까지도
성경에서 예언된 것들이 실현되는 것을 볼수 있다.

제 6 조: 정경과 외경의 차이

우리는 성경과 외경을 구별한다.
외경은 다음과 같다:
제 3, 제 4 에스드라서;
토빗트, 유딧, 지혜서, 예수 시락, 바룩;
에스더 속편;
세 청년의 노래;
수산나;
벨과 용;
므낫세의 기도;
마카비서 상하.
교회는 이들 외경이 정경과 일치하는 한도 안에서
당연히 그들을 읽고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외경은 그것의 증거로
신앙이나 기독교 종교의 어떠한 부분도
확증할만한 어떠한 능력과 가치도 가지지 아니한다.
더 나아가 외경은 성경의 권위를 저해하지 못한다.

제 7 조: 성경의 충분성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뜻을 완전하게 담고 있으며,
구원받기 위하여 사람이 믿어야 할 것들을 거기서 충분히 가르치고 있다고 믿는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삶의 전체 방식이
성경 안에 충분하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바울이 말씀했듯이,2
사도나 또는 하늘로서 온 천사라도
성경이 이미 가르치고 있는 내용 외에 다른 것을
가르쳐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말씀에 어떤 것이든지 더하거나
제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3
성경의 가르침이 모든 면에서 완전하고 충분하다는 것이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저자가 거룩하다 할지라도
사람의 기록을
성경과 대등하게 생각해서는 아니되며;
사람의 전통을,
다수의 주장을,
시대의 풍조를,
사상이나 사람들의 글귀를,
교회의 공의회나, 법, 또는 결정을
하나님의 진리 위에 두어서는 아니된다.
진리는 모든 것 위에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본성상 거짓되며
허영 자체보다 더 헛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의 무오성의 법과 일치하지 않는 모든 것들을,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4
그리고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5 라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따라서
우리 마음을 다하여 거부한다.
2 갈라디아 1:8
3 신명기 12:32; 요한계시록 22:18-19
4 요한일서 4:1
5 요한이서 10

제 8 조: 삼위일체 하나님

이 진리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우리는
단일 신성이시며,
한 분 안에 서로 혼동되지 아니하는
실재하고, 참되며, 영원히 구별되는 속성을 따라서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로 계신
한 분이신 하나님을 믿는다.
성부 하나님은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모든 것의
존재의 원인이며,
기원이요,
출처이다.
성자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의
말씀이요,
지혜요,
형상이시다.
성령 하나님은
영원한 능력과 힘으로
성부와 성자로부터 오신다.
삼위의 이러한 구별은 하나님을 세 분으로 나누지 않는다.
성부, 성자, 성령 각각이 독특한 성격에 따라 다른 성질을 가지고 계실지라도
삼 위는 그러한 존재양식을 따라서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시라고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부는 성자가 아니시며,
성자는 성부가 아니시며,
마찬가지로 성령은 성부나 성자가 아니심이 분명해진다.
이렇게 서로 구별됨에도 불구하고,
성 삼위는 서로 나뉘어지지 않으며,
혼돈되거나 혼합되지 아니한다.
오직 성자만이 육신을 입으시고,
성부께서 육신을 입지 아니하셨으며,
성령도 그렇게 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성부께서는 성자없이
또는 성령없이 계신 적이 없으신데,
삼 위가 영원부터 동등하게
한 분이시며 동일한 본질로 계시기 때문이다.
성 삼위에는 첫번과 마지막이 없으니,
진리와 능력, 선함과 자비하심에 있어서
삼위가 한 분이기 때문이다.

제 9 조: 삼위일체에 대한 성경의 증거

성삼위 하나님에 대한 진리를
우리는 성경의 증거로부터
그리고 특별히 우리 안에 경험하는
삼위의 사역으로부터 안다.
우리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게 하는 성경의 증거는
구약의 여러 곳에 기록되어 있는데
다 열거할 필요없이 선택을 한다면,
창세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또한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6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라고 말씀하셨다.7
하나님께서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 하시고
후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라 말씀하심으로 한 분을 언급하심에는
하나님의 신성에
복수의 위격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이 구절들에서 하나님께서는
몇 위격이 있으신지를 언급하지 않으시나,
구약에서 우리에게 불분명한 것이
신약에서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우리 주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성부 하나님의 목소리가 들렸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8
성자는 물에 계셨으며
성령은 비둘기의 형상으로 임재하셨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도들의 세례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다음과 같이 제정하셨다: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9
누가복음에서 가브리엘 천사는
우리 구주의 어머니인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10
다른 곳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11
[“하늘에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성부, 말씀, 성령으로
이 세 분은 곧 하나이니라.”]12
이러한 구절들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단일 신성 안에 세 분의 위격이 계신 것을 알게 된다.
비록 우리의 이성으로 이 교리를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우리는 말씀을 통하여 현재 그것을 믿으며
하늘에서 더욱 알고 즐거워할 것을 기다린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삼위께서 우리와 관련하여서
어떠한 독특한 역사를 하시는지 알아야 한다.
성부께서는 그 능력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창조주이시다.
성자께서는 그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의 구세주이시다.
성령께서는 우리 마음에 살아계시며
우리를 성화롭게 하신다.
이 삼위일체 교리를 참된 교회는
사도들의 시대로부터 현재까지
유대인과 모슬렘에 반대하여서,
그리고 말시온, 마니교, 프락시아스, 사벨리우스, 사모사타의 바울, 아리우스와 같은
교부들에 의해서 정당하게 정죄된
거짓된 그리스도인과 이단에 반대하여서
언제든지 유지하였다.
이 교리에 관하여 우리는
사도신경, 니케아 신조, 그리고 아다나시우스 신조 등 표준 신앙고백뿐 아니라
그 내용에 일치하는 초대교회 교부들의 결정을 받아들인다.
6 창세기 1:26-27
7 창세기 3:22
8 마태복음 3:17
9 마태복음 28:19
10 누가복음 1:35
11 고린도후서 13:14
12 요한1서 5:7—좀 더 나은 헬라어 텍스트를 따라서 영어성경에서 NRSV와 다른 현대 번역은 이 구절을 본문이 아닌 주석에 포함하고 있다. 한글성경에는 이 번역을 사용하지 않았다.

제 10 조: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신성을 따라서
만들어지거나 창조되지 않으시고,
만일 그렇다면 피조물이겠으나,
영원전부터 태어나신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것을 믿는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와 동일하게 영원하신
동일한 본질로서
성부의 정확한 형상으로
“하나님의 영광의 반영”이며13
모든 면에서 성부와 동일하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가 우리의 인성을 취하신 순간부터 뿐아니라
영원전부터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은,
아래의 성경의 가르침을 종합해서 볼 때에,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한 모세로부터14
만물이 하나님이신 말씀으로 창조되었다고 한 요한,15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통하여 세상을 만드셨다고 한 사도,16
그리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사도의 가르침을 따라서17 마땅히 그러하다.
이로부터 우리는
하나님, 말씀, 아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라 불리우는 분이
만물의 창조 이전에 계셨다는 결론에 이르른다.
그러므로 선지자 미가는 그리스도의 근원이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고 말하였다.18
그리고 사도는 아들에게 있어서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다”고 하였다.19
예수 그리스도는 홀로 참되시고 영원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우리가 찾으며, 경배하고, 섬기는 하나님이시다.
13 골로새서 1:15, 히브리서 1:3
14 창세기 1:1
15 요한복음 1:3
16 히브리서 1:2
17 골로새서 1:16
18 미가서 5:2
19 히브리서 7:3

제 11 조: 성령의 신성

우리는 또한 성령께서 영원전부터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오신 것을,
만들어지거나 창조되지 아니하시고,
독생하지 아니하시며,
오직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셨음을
믿고 고백한다.
순위로 볼 때에
성령은 삼위의 세번째 위이시다.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와 같이,
성령께서는 신성 본질에 있어서
위엄과 영광에 있어서
성부와 성자와 동일하시며
참되고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제 12 조: 만물의 창조

우리는 성부 하나님께서
자신이 옳다고 작정하신 시간에
하늘과 땅과 그 안의 모든 피조물들을
무로부터
말씀을 통하여, 즉 아들을 통하여 창조하셨음을 믿는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에
존재와 종류, 그리고 형태를 부여하셨으며
그들의 다양한 기능으로 창조주를 섬기도록 하셨다.
현재까지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원한 섭리와
무한한 능력으로
그 모든 것을 보전하시고 다스리신다.
그렇게 하심으로 인류를 다스리시고
인류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천사들을 선하게 지으셔서
그들로 자신의 사자가 되어
택한 백성들을 돌보게 하셨다.
천사들중 일부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부여하신 영광으로부터
영원한 처벌로 타락하였으며,
일부는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서
그들 원래의 영광스러운 모습에 남아있다.
마귀와 악한 영들은 매우 타락하여
하나님과 모든 선한 것의 원수가 되었다.
그들은 도둑처럼
그들의 모든 힘을 다 하여
그들의 거짓으로
교회와 교회에 속한 성도들을
파괴하고 망가뜨리려고 벼르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악함으로 인하여
영원한 멸망으로 이미 저주를 받았으며
매일의 고통을 더해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혼과 천사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두개인들의 실수를 경계하며,
마귀들이 타락한 존재가 아니라
악한 본성을 가지고 스스로 만들어졌다고 믿는 마니교의 거짓을 경계한다.

제 13 조: 하나님의 섭리

우리는 선하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후에
피조물을 우연이나 운명에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자신의 거룩한 뜻에 따라
인도하시고 다스리시는 것을 믿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정하심이 없이는
이 세상에서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아니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죄의 근원도 아니시며
그로인해 비난받으실 수 없다.
하나님의 능력과 선하심은 무한하여 우리가 감히 이해할 수 없어서,
마귀와 악한 자들이 부당하게 행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모든 역사를 옳고 공의롭게 조율하시고 행하신다.
우리는 과도한 호기심으로
인간 이해의 능력을 초월하여 행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추측하려고 노력하지 아니한다.
다만 우리는 모든 겸손함과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정당한 판단을 경배한다.
하나님의 판단은 우리에게 숨겨져있으나
인간의 한계를 넘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것을 배우며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그에 만족한다.
이 교리는 아무 일도 우연히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고
오직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선하신 뜻으로만 일어난다는 것을 가르치므로
형언할 수 없는 위로를 우리에게 부여한다.
하나님께서는 아버지의 자애로움으로 우리를 돌보시고
만물을 그의 다스리심 아래 보전하시므로
그의 뜻이 아니고는
(머리카락의 수도 다 헤아리시므로)
한 올이라도 우리의 머리에서 떨어지지 아니하고
심지어 작은 새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한다.20
하나님께서 마귀와 우리의 원수들을 억제하셔서
그 분의 허락과 뜻이 아니고는
우리를 해하지 못하게 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우리는 위로를 느낄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세상일에 관여하지 않고
모든 것이 우연에 의하여 일어난다고 가르치는
에피큐러스파의 거짓을 경계한다.
20 마태복음 10:29-30

제 14 조: 인간의 창조와 타락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땅의 흙으로부터 지으시고 자신의 모양과 형상이 되게 하셨음을 믿는다.
그리하여 인류는 선하고, 의로우며, 거룩하였으며
자신의 뜻에 의하여
모든 것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러나 인간은 그 위대함 안에 살 때에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였으며21
그것의 탁월함을 인식하지 못하였다.
오히려 인간은 마귀의 말에 현혹되어
자신을 스스로 죄에 내어주었으며
그 결과 죽음과 저주에 이르게 되었다.
그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생명의 법을 거역하고
스스로의 죄를 따라서
그의 전체 인간 본성이 타락하여
그들의 참된 생명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스스로 떠났다.
그 결과 그들은 죄인이 되어
육신적이고 영적인 죽음에 이르렀으며,
그들의 삶의 모든 면에서
악하고, 왜곡되고, 타락하게 되었다.
그들은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바
모든 탁월한 은사들을 잃어버리고,
오직 작은 흔적들만을 남겨두고 있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은사임을 증거하는데
사람이 핑계치 못한다.
더군다나, 우리 안에 있는 모든 빛이 어두워졌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라는
성경 말씀이 가르치듯이22
요한은 인류를 “어두움”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자유의지에 관련하여,
인류는 다만 죄의 종일뿐,
하늘로서 주어지지 않는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가르침에 위배되는 것을 우리는 배격한다.23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라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는데24
누가 스스로 선한 일을 할 수 있다고 자랑하겠는가?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라는 말씀을 이해할 때에
누가 스스로의 의지를 자랑하겠는가?25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누가 자신의 지식을 논할 수 있는가?26
간단하게 말해서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라는 말씀과 같이27
우리는 스스로에 관하여 스스로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
누가 한 줄의 생각이라도 만들어낼 수 있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사도가 가르친 내용,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쁜 뜻을 위하여
우리의 의지와 행함에
우리 안에 역사하신다는 가르침에28
올바로 서야한다.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에게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라고 말씀하듯이29
그리스도 안에서가 아니라면
하나님의 이해와 뜻에 합당한
어떠한 이해와 뜻도 없다.
21 시편 49:20
22 요한복음 1:5
23 요한복음 3:27
24 요한복음 6:44
25 로마서 8:7
26 고린도전서 2:14
27 고린도후서 3:5
28 빌립보서 2:13
29 요한복음 15:5

제 15 조: 원죄

우리는 아담의 불순종으로 원죄가
모든 인류에게 전파된 것을 믿는다.30
죄는 인간 본성 전체의 타락이며
유전적으로 전파되는 타락이기 때문에
어머니 뱃속의 아기에게조차도 전파가 되고,
인류의 모든 죄를 만드는 뿌리이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이 죄가 그만큼 악하고 중대한 일이기 때문에
그로 인해서 온 인류를 정죄하셨다.
죄가 오염된 샘물처럼 지속적으로 넘치기 때문에
세례에 의해서도 그것은 전부 사라지거나 제거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은혜와 자비하심으로
죄를 용서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에게 죄책이 전가되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로 하여금 삶에서 잠들지 아니하고
죄의 영향에 민감하여서
사망의 몸으로부터 구원을 받기 위해 애쓰면서
탄식하게 만든다.31
이러한 가르침을 바탕으로 우리는
죄가 다만 모방으로 발생한다고 가르치는 펠라기우스파의 과오를 배격한다.
30 로마서 5:12-13
31 로마서 7:24

제 16 조: 선택의 교리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그의 모든 자손이 영벌과 멸망으로 정죄받은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자비와 공의라는 자신의
본연의 모습으로 드러내심을 우리는 믿는다.
하나님은 자비하셔서
순전하신 자신의 선한 뜻을 따라
죄인들의 행위를 고려치 아니하시고
자신의 영원하고 변치않는 작정으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하시고 선택하신 자들을
그들의 영벌로부터 이끌어내시고 구원하신다.
하나님은 의로우셔서
스스로를 멸망과 타락으로 떨어뜨린
다른 사람들을 그대로 버려두신다.

제 17 조: 타락한 인간의 회복

우리의 좋으신 하나님께서
아담과 이브가 스스로를 육신적이고 영적인 죽음으로 떨어뜨려서
완전히 비참하게 된 것을 보시고
그의 무한하신 지혜와 선하심으로,
그들이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떠날 때에
그들을 찾아나서신 것을 우리는 믿는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여자에게서 태어날 자신의 아들을 그들에게 주셔서32
뱀의 머리를 깨뜨리고33
그들에게 복을 주실 것을 약속하심으로
그들을 위로하셨다.
32 갈라디아서 4:4
33 창세기 3:15

제 18 조: 성육신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작정하신 때에
자신의 유일하고 영원하신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실 때에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예전 조상들에게 주셨던 약속을
성취하신 것을 믿는다.
그 아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남자의 참여없이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잉태되심으로,
죄를 제외하고는 사람의 모든 연약함을 가지시며
진정한 사람의 본성을 취하시고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34
그리스도는 몸과 관련하여 사람의 본성을 취하셨을뿐 아니라
또한 진정으로 사람의 영혼을 가지사 참된 인간이 되셨다.
몸과 함께 영혼도 죄로 타락하였기 때문에
그 둘 모두를 함께 구원하기 위하여
그리스도는 인간의 몸과 영혼을 입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육신의 어머니로부터 육신을 취하였음을 부인하는
재세례파의 거짓 주장에 반대하여)
몸에 관련하여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부터 태어난 결실로35
아이의 참된 살과 피를 가지셨음을 믿는다.36
몸에 관련하여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이며37
동정녀 마리아의 태의 결실이며38
여자에게서 태어났으며39
다윗의 후손이며40
이새의 뿌리이며41
유다지파에서 나시므로42
몸에 관련하여 유대인의 자손으로 오셨다.
그리스도는 또한 아브라함과 사라의 자손으로
죄를 제외하고는 그의 형제와 자매들고 같이 되셨다.43
이렇게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의미의
우리의 참된 임마누엘이시다.44
34 빌립보서 2:7
35 히브리서 2:14
36 사도행전 2:30
37 로마서 1:3
38 누가복음 1:42
39 갈라디아서 4:4
40 디모데후서 2:8
41 로마서 15:12
42 히브리서 7:14
43 히브리서 2:17, 4:15
44 마태복음 1:23

제 19 조: 그리스도의 두 본성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어 태어나심으로
아들의 위격 (person)은 인간의 본성과 불가분리적으로 연합하였음을 우리는 믿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은 두 분이 아니며,
두 위격이 아니며,
한 위격에 두 본성이 결합한 것으로
그 두 본성은 각각의 고유한 성격을 유지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신성은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시작과 끝이 없고45
하늘과 땅을 채우신다.
그리스도의 인성도 그 고유한 성질을 잃지 아니하고
피조물로서의 성질을 유지하므로,
그리스도의 인성은 시작된 날이 있고,
참된 몸이 갖는 모든 유한한 성질을 유지한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죽지 아니하는 불멸성을 가지셨으나
그것이 그의 인성을 변화시키지는 않는다.
우리의 구원과 부활이
그의 실제적인 인성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두 본성은
한 위격 (person) 안에 연합되어 있으므로
그의 죽음에 있어서도 그 둘은 분리되지 아니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죽으실 때에 성부께 부탁하신 것은
그의 죽은 육체를 떠난 인간의 영혼이다.
그러나 죽음에서도 그리스도의 신성은
그가 무덤에 뉘일 때에도
그의 인성과 연합되어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신성은
그가 어린아이일 때에도 그에게 있었듯이,
죽음을 통해서 잠시 드러나 보이지 않았지만
그리스도에 늘 속해 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하여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참된 하나님이며 참된 인간임을 믿는다.
그리스도는 그의 권능으로
죽음을 이길 수 있는 참된 하나님이시며,
또한 그의 육체의 연약함을 따라
우리를 위하여 죽을 수 있는 참된 인간이시다.
45 히브리서 7:3

제 20 조: 그리스도의 안에 보이신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하심

완전히 자비로우시고 동시에 매우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시어
불순종할 수 있는 인간의 본성을 취하게 하시고,
그의 가장 무서운 고난과 죽음을 통하여
그의 인간 본성으로 죄의 처벌을 감당하게 하셨다.
그의 아들로 우리의 죄를 감당하게 하심으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에게 자신의 공의를 나타내셨다.
그리고 정작 죄인되어서 멸망을 받아 마땅한 우리에게는
가장 완전한 사랑을 가지사
자신의 아들을 우리에게 주시어 죽게 하시고,
우리가 죽지아니하고 영생을 가질 수 있도록
우리에게 칭의를 허락하기 위하여
그 아들을 죽음으로부터 다시 살리심으로
자신의 선하심과 자비를 부어주셨다.

제 21 조: 그리스도의 속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서약을 통하여 된 멜기세덱의 반열을 따라서
영원하신 대제사장임을 믿는다.
그리고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자신을 성부께 드리시고
선지자들이 예언한 바와 같이,
우리의 죄를 씻기 위하여
그의 귀하신 피를 흘리심으로
성부의 분노를 충분히 만족시키셨음을 믿는다.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라 함과 같이
하나님의 아들에게 징계가 내려졌다.
그는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같았으며
“악인”들과 함께 계수되었으며46
본디오 빌라도가 그는 죄가 없다고 공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죄인으로 정죄를 받았다.
그리스도는 자신이 빼앗지 아니한 것을 물어주었으며47
그의 몸과 영혼 모두를 통하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여”48
고난을 당하셨다.
그가 우리의 죄 때문에
무서운 처벌을 감당하실 때에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었으며49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으셨다.50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용서하기 위하여
이 모든 고난을 당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고51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임을 안다.52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으로부터 모든 위로를 얻으며,
그리스도께서 이미 치루셔서
성도들을 영원히 완전하게 만든
이 유일한 희생 이외에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화해할
다른 어떠한 방편을 찾거나 만들 필요가 없다.
이러한 이유를 따라서
하나님의 천사는 그를 예수, 즉 구세주라 불렀는데,
그것은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의미이다.53
46 이사야 53:4-12
47 시편 69:4
48 베드로전서 3:18
49 누가복음 22:44
50 마태복음 27:46
51 고린도전서 2:2
52 빌립보서 3:8
53 마태복음 1:21

제 22 조: 믿음으로 의롭게 됨

구원이라는 이 커다란 신비에 대한 참된 지식을 우리가 얻기 위하여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에 참된 믿음, 즉
그의 모든 공로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 분 홀로 충분하여서
그 외의 다른 어떤 것도 추구하지 않는 믿음을
우리 안에 심어주심을 우리는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필요한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없든지
아니면 모든 것이 다 그 분 안에 있든지 간에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하는 사람들은
그의 구원을 완전하게 얻는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로 불충분하다던지
그리스도 외에 다른 것이 필요하다던지 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가장 심각한 모독이 된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반쪽짜리 구세주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과 함께
우리가 “오직 믿음으로”
또는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을 고백한다.54
그러나 정확하게 말해서 그것이
믿음 자체가 우리를 의롭게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믿음이란 우리가 우리의 의로움이신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도구일뿐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고 우리를 대신하여
그가 행하신 모든 공로와 거룩한 일들을
우리에게 부여하시는
우리의 의로움이시다.
그리고 믿음은 우리로 그리스도와 그의 모든 은총과
교통하게 하는 도구이다.
그러한 모든 은총들이 우리의 것이 될 때에
그것이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54 로마서 3:28

제 23 조: 죄인들의 칭의

우리가 받은 축복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의 죄가 용서된 것과
그 죄용서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의로움을 포함하고 있음을 우리는 믿는다.
이것은 다윗과 바울이
하나님께서 행위를 보지 아니하시고
의로움을 부여하신
사람들이 복되다고 한 가르침에 잘 나타나 있다.55
바울은 또한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라고 가르치고 있다.56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들의 모습 그대로를 돌아보면서
순전한 겸손함으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드리며;
어떠한 것도 우리의 것으로 또는 우리의 공로로 주장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믿을 때에 우리 안에 오신,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의 순종에만
의지하고 그로서 안식을 얻으면서
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 구원의 기초를 붙들어야 한다.
이 구원의 기초는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할만 하며,
우리의 첫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 떨며
무화과 잎으로 자신들을 가리려고 했던 일들을 하지 아니하며,
두려움과 공포로부터 해방되는 확신을 가지도록 하기에 충분하다.
사실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서야할 터인데,
우리가 우리 자신이나 다른 피조물에 의지하여 선다면,
아무리 작은 일일 경우라 할지라도,
우리는 모두 멸망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다윗과 같이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하지 마소서,
주의 눈 앞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 라고 고백하여야 한다.57
55 시편 32:1; 로마서 4:6
56 로마서 3:24
57 시편 143:2

제 24 조: 죄인의 성화

우리는 이 참된 신앙, 즉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우리 안에 생겨난 이 신앙이
우리를 거듭 태어나게 하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서58
우리로 죄의 종으로부터 해방되어
새로운 삶을 살게 한다는 것을 믿는다.59
그러므로 의로움에 이르게 하는 이 신앙이 사람들 안에 역사할 때에
나태한 삶을 떠나서
경건하고 거룩한 삶을 살도록 인도한다.
이러한 참된 신앙이 없다면
사람들은 어떠한 일을 할 때에 하나님을 위한 사랑으로 아니 하고
저주를 두려워하면서
오직 자신만을 위하여 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 거룩한 신앙은
사람들 안에 반드시 결실을 맺는다.
그 이유는 우리가 말하는 것은 헛된 신앙이 아니라,
성경이 가르치는 바,
성도로 하여금 스스로 하나님께서 성경에 명령하신 것을
행하도록 인도하는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기 때문이다.60
신앙이라는 선한 뿌리로부터 나오는 이러한 삶은
모두 하나님의 은헤로 인하여 성화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것이다.
그러나 선한 행위로 우리가 의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선한 행위를 하기 이전에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로워졌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나무 자체가 좋지 않은데
그 열매가 좋다면 좋은 거라고 말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선한 행위가 구원을 위한 공로가 아니라면
무엇을 얻기 위한 것인가?
사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61
라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마땅히 선한 삶을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슨 빚이 있으신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의 말씀을 명심하여야 한다: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62
우리는 하나님께서 선한 삶에 대한 상급을 주심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따라 선물로 주실 것이다.
우리가 선한 행동으로 살지만
우리의 구원을 그 위에 세우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우리는 우리의 죄성으로 오염되어서
처벌의 대상이 되지 아니하는
어떠한 행위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는 하나를 행하였다 하여도
우리의 단 하나의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마땅히 그것을 거부하신다.
그러므로 구원에 대한 우리의 확신과 양심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죽음이라는 공로에 근거해 있지 아니하면
우리는 늘 아무런 확신이 없이 의심에 흔들릴 것이며
우리의 불쌍한 양심을 끊임없이 고통을 당할 것이다.
58 고린도후서 5:17
59 로마서 6:4
60 갈라디아서 5:6
61 빌립보서 2:13
62 누가복음 17:10

제 25 조: 율법의 성취

우리는 율법의 의식과 상징들이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폐지되었으며
미래에 이루어지기로 예견했던 것들이 성취되어서
그러한 사용들이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중지되어야 한다는 것을 믿는다.
그러나 그 율법의 진리와 내용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대로
우리를 위하여 그 안에 남아있다.
율법의 의식을 사용함이 폐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율법과 선지서가 가르치는 증거들을 계속적으로 사용한다.
그들이 우리로 하여금 복음 안에서 확신하게 하며,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온전하게 살도록
우리의 삶을 인도하기 때문이다.

제 26 조: 그리스도의 중보

우리는 유일한 중보자요 중재자이신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63
하나님께 나아갈 길이 없음을 믿는다.
그는 그의 신성과 인성이 연합하여
사람이 되셔서
우리가 그를 통하여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얻었다.
그를 통하지 않고는 전혀 다른 길이 없다.
성부 하나님께서 자신과 우리 사이에 임명하신 이 중보자는
그의 높으신 위엄을 우리가 두려워하여
우리의 생각을 따라서
다른 중재자를 추구하도록 하지 않는다.
하늘 위에나 땅 아래 모든 피조물 중에
예수 그리스도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는 분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이시지만
“자신을 비워서”
우리를 위하여 “사람의 모양”으로 “종의 형체”를 가지셨으며,64
“범사에 그의 형제과 자매와 같이” 되셨다.65
우리가 다른 중보자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 보라.
“우리가 원수되었을 때에”66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버리신 분보다 더 우리를 사랑하는 분이 있겠는가?
그리고 영광과 능력을 가진 다른 중보자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 보라.
성부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계신 그 분만큼
영광과 능력을 가지신 분이,67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68
그리고 하나님 자신의 사랑하시는 아들보다
더 우리의 기도에 귀기울이실 분이 있는가?
그러므로 성인들을 중보자로 섬기는 것은
잘못된 신앙으로
실제로 그들을 욕보이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행하지도 않았고 요구하지도 않았던 것이며,
그들의 저서에도 나타나듯이,
자신들의 의무를 실천함과 관련하여
그들이 지속적으로 거부하던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주장하는 것은 사람이 무가치하다는 것이 아니다.
요점은 우리가 기도할 때에
우리 사람의 가치를 기반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움이 우리의 것이 된
바로 그 그리스도의 공로와 가치만을 기반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이러한 어리석은 두려움, 또는 불신앙을 제거하기를 원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69
그리스도께서 유혹을 받으시고
고통을 당하셨기 때문에
유혹받는 자들을 능히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70
더 나아가, 우리를 권면하여
그리스도께 더 가까이 가게 하기 위하여
사도는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71
동일한 사도는 또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72
또한 동일하게
그리스도께서 “영원히 계시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73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더 필요로 하랴?
그리스도 자신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74
왜 다른 중보자를 필요로 할 것인가?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우리의 중보자로 주시기를 기뻐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유일한 중보자를 떠나
구해도 찾지 못할,
다른 중보자를 찾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주실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인임을 알고 계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라서,
유일한 중보자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기도문이 가르치는 바와 같이,
그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는 모든 것을
받을 줄을 확신하면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자.
63 요한일서 2:1
64 빌립보서 2:6-8
65 히브리서 2:17
66 로마서 5:10
67 로마서 8:34; 히브리서 1:3
68 마태복음 28:18
69 히브리서 2:17
70 히브리서 2:18
71 히브리서 4:14-16
72 히브리서 10:19, 22
73 히브리서 7:24-25
74 요한복음 14:6

제 27 조: 하나의 거룩한 교회

우리는 하나인 보편적인 교회를 믿고 고백한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용서함을 받고
성령으로 성화되고 인쳐졌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구원을 기다리는
참된 기독교 성도들로 이루어진
거룩한 회중이다.
이 교회는 세상의 시작으로부터 존재하여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왕이신 것처럼
그의 백성인 교회도 영원히 존재하는 사실에서 보듯이
끝까지 지속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박해로부터,
비록 한 때 교회가 매우 작아 보이고
사람의 눈에 사라질 것 같이 보여도,
이 거룩한 교회를 보존하신다.
예를 들어서,
아합 시대의 위험한 상황에서
주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바알에게 절하지 아니한 칠천 명을 보존하셨다.75
그러므로 이 거룩한 교회는
어느 한 장소나 사람들에게
제한되거나, 매이거나, 구속되지 아니한다.
교회는 온 세상에 전파되고 퍼져서 존재하지만,
한 성령 안에서
신앙의 능력으로
한 마음과 뜻으로 연합되고 연결된다.
75 열왕기상 19:18

제 28 조: 교회 성도들의 의무

이 거룩한 교회는 구원받은 사람들의 회중이고
그 밖에는 구원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어떠한 지위와 상태에 있던지간에
스스로 만족하여
교회를 떠나지 말아야 한다.
모든 사람들은 교회에 가입하여
한 몸에 속한 지체들로서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은사를 따라서
교회의 가르침과 훈육에 순종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에 순종하며
섬김으로 공동체를 세우면서
교회와 연합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합을 더욱 효과적으로 하기 위하여
모든 믿는 성도들은 의무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교회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과 분리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사회의 권세가 교회를 금하고
심지어는 육체적인 억압이나 죽음을 야기한다 하여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어느 곳에서든지
교회에 참여하기 위함이다.
교회를 떠나거나 참여하지 아니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거역하는 것이다.

제 29 조: 참된 교회의 표식

현재 세상의 모든 이단들이 “교회”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을 주장하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참된 교회가 무엇인지
성실하고 매우 주의깊게 분별하여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가 여기서 교회 안에서 물리적으로 성도들과 함께 섞여 있으나
실제로는 성도가 아닌 위선자들의 무리들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말하는 것은 참된 교회의 몸과 삶은
스스로를 “교회”라고 부르는 모든 이단들로부터 분리되어야 함이다.
참된 교회는 다음과 같은 표식에 의하여 구별된다:
교회는 복음을 온전하게 설교한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대로 온전하게 성례를 집행한다.
교회는 잘못을 바로잡기 위하여 교회 징계를 실천한다.
요약을 하면,
교회는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운영되어야 하며
그에 어긋나는 모든 것을 배격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머리로 존중해야 한다.
이러한 표식들에 의하여 우리는 참된 교회에 대한 확신을 가지며
아무도 그 참된 교회로부터 분리되지 말아야 한다.
교회에 속한 성도들에 관하여는,
우리는 다음과 같은 뚜렷한 표식들로 성도들을 구별한다:
우선은 그들의 신앙으로,
그리고 그들이 유일한 구세주인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죄를 떠나서 의로움을 추구하는 삶으로.
성도들은 참되신 하나님과 자신들의 이웃을 사랑함에 있어서
좌로나 우로 흔들리지 아니하며
육체의 정욕과 일을 십자가에 못박는다.
성도들이 비록 커다란 어려움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그들이 사는 모든 날동안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그에 대한 신앙으로 말미암아 죄용서를 받은
구주 예수님의 피, 고난, 죽음과 순종하심에 계속적으로 의지하면서
그 어려움들을 극복한다.
이에 반하여,
거짓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큰 권위를 그들 교회와 그들의 결정에 부여한다.
거짓 교회는 그리스도의 다스리심에 순종하기를 거부한다.
거짓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말씀에 제정하신대로
성례를 시행하지 아니한다.
거짓 교회는 그들이 원하는대로
성례에 더하거나 감하기도 한다.
거짓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우기 보다
사람들 위에 교회를 세운다.
거짓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거룩하게 사는,
그리고 그들의 잘못과 탐욕과 우상숭배를 책망하는 성도들을 핍박한다.
참된 교회와 거짓된 교회는 분간하기 쉬우며
그렇게 구별하기도 어렵지 않다.

제 30 조: 교회의 운영

참된 교회는 우리 구주께서 그의 말씀에 가르치신대로
영적인 질서에 따라서 운영되어야 한다고 우리는 믿는다.
교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고
성례를 집행하는
목사를 두어야 한다.
교회에는 또한
목사와 함께
교회의 카운실 (제직회)을 구성하는 장로와 집사를 두어야 한다.
이러한 구성의 방편을 사용하므로
참된 신앙이 보존되고,
참된 신앙고백이 전파되며,
악한 사람들이 억제되고 영적으로 회복되며,
또한 모든 가난하고 고난받는 사람들이 위로를 받고
그들의 필요를 따라 채워지게 된다.
이러한 구성의 방편을 사용하므로
바울이 디모데에게 당부한 말씀에 따라서
충실한 제직들이 세워질 때에
교회의 모든 일들이 합당하게 이루어진다.76
76 디모데전서 3

제 31 조: 교회의 직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목사, 장로, 그리고 집사가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바에 따라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교회의 적법한 선거의 절차에 따라서
그들의 직분으로 선출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모든 성도는 부정한 수단으로 자신을 주장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기다리면서 주의하여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 성도들은 자신의 소명을 깨닫게 되고
주님께서 부르셨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말씀을 맡은 목사에 관하여,
그들 각자의 사역이 어디이든지 상관없이
모든 목사는 동일한 권위와 권한을 가진다.
그 이유는 그들 모두가
유일하고 보편적인 주교이시며
교회의 유일한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가 침해되거나 경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모든 성도들이 교회의 말씀의 사역자와 장로를
그들의 사역의 중요성으로 말미암아
가능한 한 많이
특별하게 존중하여야 하며,
불평과 다툼 없이
그들과 화평하게 지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 32 조: 교회의 질서와 훈련

교회를 운영하는 지도자들이
교회의 조직을 유지하기 위하여
그들 사이에 질서를 세우는 것이
실제적으로 유익하고 선한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유일한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제정하신 것으로부터
떠나지 않도록 언제나 주의하여야 한다고 우리는 믿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배함에 있어서
어느 면에서든지
우리의 양심을 구속하고 억압하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규칙들과 법들을
우리는 배격한다.
우리는 오직 교회 안에 조화와 일치를 유지하고
온 성도들이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인도하는 것들만 인정한다.
그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출교는, 그것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포함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할 때에
필요한 것이다.

제 33 조: 성례

우리의 선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어리석음과 연약함을 불쌍히 여기셔서,
자신의 약속을 우리 안에 확증하시고
우리를 향하신 선한 뜻과 은혜를 보증하시며
또한 우리의 신앙을 양육하고 보존하기 위하여
우리를 위하여 성례를 제정하셨음을 우리는 믿는다.
하나님께서 성례를 복음의 말씀에 더하셔서,
그가 우리로 말씀을 따라서 이해하도록 하신 것과
그리고 그가 우리의 마음 안에 역사하시는 것을,
우리에게 부여하시는 구원을 우리 안에 확증하시기 위하여
우리로 하여금 감각을 통하여 더 잘 이해하도록 하신다.
성례는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방편으로,
내적이며 보이지 아니하는 것의
보이는 표식이며 보증이다.
그러므로 성례는 우리를 속이는
공허하고 헛된 표식이 아니다.
성례가 나타내는 진실을 예수 그리스도로서
그가 나타나지 아니하면 성례는 헛된 것이 된다.
더 나아가,
우리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제정하신
성례의 수효에 만족한다.
성례는 오직 두 개로,
세례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찬이다.

제 34 조: 세례

율법의 요구를 성취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를 흘리심으로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사람들이 할 수만 있으면 하려고 했던 바의
모든 피흘림에 마침이 되셨음을
우리는 믿고 고백한다.
피를 흘림으로 행하던 할례를 폐지하시고
그리스도께서 대신 세례라는 성례를 제정하셨다.
세례에 의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 안에 인도되어서
다른 모든 사람들과 이방 종교로부터 구별되며,
그의 표식과 증표를 지니므로
하나님께 온전히 속하게 된다.
세례는 또한 우리의 자비로우신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영원히 우리의 하나님이심을
우리에게 증거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에게 속한 모든 성도들이
물을 사용하여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77
세례를 받을 것을 명하셨다.
세례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다음의 가르침을 보여주신다:
물이 우리 몸에 부어질 때에
그것이 우리 몸의 더러움을 씻어주듯이
또한 세례를 받는 사람들 위에 물이 뿌려질 때에
그들의 몸의 더러움이 보이듯이,
그리스도의 피가 동일한 것을 내적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의 영혼 안에 이루신다.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죄를 씻어서 깨끗하게 함으로
우리로 진노의 자식으로부터 변화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다.
이러한 변화는 물질적인 물의 의하여 일어나는 변화가 아니고,
악한 바로의 폭정을 피하여
가나안의 거룩한 땅에 들어가기 위하여
지나야 하는 통로인 홍해,
우리의 홍해가 되시는
하나님의 아들의 보배로운 피가 뿌려짐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목사가 목회의 직무를 따라서
눈에 보이는 성례를 우리에게 베풀지만,
그 성례가 가리키는 것, 보이지 아니하는 은사와 은혜, 즉
우리 영혼의 모든 더러움과 불의함을 씻고, 정결케 하고, 깨끗하게 함,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고 위로로 채우심,
아버지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진실된 확신을 주심,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게 하시는78
역사는 우리 주님께서 주신다.
이러한 이유를 따라서
영생에 이르기 소망하는 모든 성도는,
우리가 두번 거듭날 수 없기 때문에,
세례를 반복해서 받지 말고 오직 한번 받아야 한다고 우리는 믿는다.
이 세례는 물이 우리에게 뿌려지는 세례의식을 받을 때 뿐 아니라
우리의 전 인생을 통하여 유익이 된다.
이러한 이유를 따라서 우리는
이미 받은 세례에 만족하지 아니하고
성도의 자녀들이 받는 유아세례를 정죄하는
재세례파의 과오를 배격한다.
구약 이스라엘의 어린아이들이
우리의 자녀들에게도 주어진 동일한 약속을 따라서
할례를 받았던 것과 같이,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이 세례를 받아
언약의 표식으로 인침을 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진실로 그리스도께서는 성인들과 마찬가지로
성도들의 어린 자녀들의 죄용서를 위해서도 피를 흘리셨다.
그러므로 어린아이들도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하여 행하신 구원의
표식과 성례를 받아야 한다.
주님께서 구약의 율법에
아이들이 태어난 직후에
아이들을 위하여 어린 양을 제물로 바침으로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의 예표가 그 아이들에게 주어진 것과 같다.
이 예표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례였다.
더 나아가,
과거에 할례가 유대인들에게 한 것을
세례가 우리의 자녀들에게 행한다.
그래서 바울은 세례를 “그리스도의 할례”라 하였다.79
77 마태복음 28:19
78 골로새서 3:9-10
79 골로새서 2:11

제 35 조: 성만찬

우리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거듭 태어나서 그의 가족이 된
교회에 연합된 모든 성도들을
양육하고 보존하기 위하여
성만찬의 성례를 제정하신 것을 믿고 고백한다.
거듭 태어난 성도는 두 삶을 사는데,
하나는 육신적이고 현세적인 삶으로,
사람이 처음 생명으로 태어날 때부터 사는 삶으로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사는 삶이다.
다른 삶은 영적이고 천상적인 삶으로,
성도가 거듭 태어날 때에
그리스도의 몸에 연합되면서 주어지는 삶으로
복음의 말씀으로부터 온다.
이 삶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성도들에게만 주어진다.
육신적이고 지상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육신적인 생명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지상적이며 물질적으로 적합한 식량을 우리에게 부여하셨다.
그러나 성도들에게만 있는
영적이고 천상적인 생명을 보존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하늘로서 내려온 생명의 떡을 보내셨는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성도가 그 떡을 먹을 때에,
다시 말하면, 성도가 신앙에 의하여
영적으로 받아들여서 연합되었을 때에
그들의 영적인 생명을 양육하고 보존한다.
이 영적이고 천상적인 떡을
우리에게 더 잘 알려주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지상적이고 보이는 떡을 그의 몸의 상징으로
그리고 잔을 그의 피의 상징으로 사용하여
성례를 제정하셨다.
성찬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다음과 같이 가르치신다:
우리가 떡과 잔을 우리 손에 받아서
우리 입으로 먹고 마실 때에
그것에 의해서 우리의 생명이 유지되는 것과 같이,
우리의 유일한 구주이신 그리스도의 참된 몸과 피를
우리의 영적인 생명을 위하여
우리의 영혼으로 받는다.
이 성찬을 우리는 신앙으로 받는데,
신앙은 우리 영혼의 손과 입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찬물이라는 상징을 통하여
우리 안에 역사하기시 때문에,
비록 그리스도께서 성찬으로 역사하시는 방법이
마치 성령의 역사가 신비스럽고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사람의 이해의 능력을 넘어서서 우리에게 불가해하지만
성례가 헛되게 제정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우리가 먹는 것은 그리스도 자신의 육체의 몸이요
마시는 것은 그 자신의 피라고 말하는 것은 틀리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먹고 마시는 방법은 입으로 함이 아니요
신앙을 통하여 영혼으로 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성부 하나님 오른편에 언제나 앉아 계시며
동시에 신앙으로는
우리와 교통하심을 중단하지 아니하신다.
성찬은 영적인 만찬으로
거기서 그리스도께서 자신과 함께 모든 복들을 우리에게 부어주신다.
그 만찬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고난과 죽음이 이룬 공로를 우리가 즐겨 받는 것처럼
그리스도 자신을 우리가 즐겨 받도록 우리에게 주신다.
그의 몸을 취함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비참하고 갈급한 영혼을
위로하고, 양육하고, 강건하게 하시며,
그의 피를 마심으로 우리 영혼의 근심을 덜어주고 새롭게 하신다.
더 나아가서, 성례와 그 성례가 상징하는 것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 둘을 함께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어떤 악한 사람들은 성례는 받아들이지만
성례의 진실은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정죄를 당한다.
유다와 마술사 시몬은 분명히 성례를 받았으나
그 성례가 가리키는 그리스도는 받지 아니하였다.
그리스도는 오직 성도들에게만 교통하신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의 일원으로
감사함으로
모두 함께 참여하면서
우리 구주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순전하게 기억하면서
그리고 우리의 신앙과 기독교 신조를 고백하면서
오직 겸손과 경배함으로
성만찬을 받는다.
그러므로 주의깊게 자신을 살펴보지 않고서는
아무라도 이 성찬의 상에 나오지 아니한다.
자신을 살피지 않고 떡을 먹고
잔을 마시는 것은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기 때문이다.80
요약을 하면, 성만찬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그리고 이웃을 향한
뜨거운 사랑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들이 성찬에 첨가하고 혼합해 놓은
모든 혼란스러운 아이디어와 정죄할만한 의식들을
성찬을 모독하는 것으로 알고 배격한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그리고 사도들이 그들의 가르침에
제정해 놓은 제도로 만족해야 한다.
80 고린도전서 11:29

제 36 조: 국가 정부

사람들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왕, 군주와 국가의 관리들을 세우셨음을 믿는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이 법과 제도에 의하여 운영되므로
사람들의 무법성이 억제되고
사람들 사이의 모든 것들이 선한 질서 안에 운영되기를 원하신다.
그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악인을 처벌하고
선인을 보호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정부에 권한을 부여하셨다.
[RCA에만 해당하는 내용*
그리고 정부의 직무는 단지 공적인 분야를 돌보고 관리하는 것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를 촉진하기 위하여
모든 우상숭배와 적그리스도를 경배하는 잘못을
제거하고 방지하면서,
어디서나 복음을 설교하도록 지원하면서,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에 요구하시듯이
모두가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길 수 있도록
성직을 지원함에까지 연장된다.]
[CRC 에만 해당하는 내용**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회로 발전하는데 공헌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국가 관리들은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면서
복음을 설교함에 있어서나
하나님을 경배하는 모든 면에 있어서
방해가 되는 것들을 제거할 책무를 가진다.
국가 관리들은 이러한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경향으로
빠지지 않도록 모든 주의를 온전히 기울여야 하며,
그들에게 부여된 영역 안에서
그들에게 속한 방법을 따라서 행사하여야 한다.
국가 관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자유롭게 전파되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가 확장되도록
그리고 반기독교적인 저항이 저지되도록
이러한 직무을 수행하여야 한다.]
모든 사람들은
지위나, 환경이나, 신분에 상관없이
국가에 순종하여야 하며,
세금을 지불해야 하며,
그 관리들을 존중하고 존경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지 않는 한 모든 일에 그들에게 순종하며,
주님께서 그들의 직무를 온전히 인도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모든 경건과 품위 안에서
평안하고 조용하게 살도록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여야 한다.
[RCA에만 해당하는 내용***
이 이슈에 관하여 우리는 재세례파나 무정부주의자,
그리고 일반적으로 정부의 권위와 관리들을 제거하기 원하는,
그리고 재물의 공동 소유를 주장하고
하나님께서 사람들 사이에 제정하신
도덕질서를 부패시킴으로
공의를 전복시키는 모든 이들을 배격한다.]
* RCA 교단은 본 벨직 신앙고백이 오늘날의 상황이 정확하게 서술되지 않는 과거의 상황에서 쓰여진 점을 인식하면서, 원래의 텍스트를 유지하기로 하였다.
** CRC의 1958년도 총회는 위에 언급된 한 단락을 괄호에 있는 세 단락으로 교체하였다.
*** RCA 교단은 본 벨직 신앙고백이 오늘날의 상황이 정확하게 서술되지 않는 과거의 상황에서 쓰여진 점을 인식하면서, 제36조의 마지막 단락에서 원래의 텍스트를 유지한다. CRC의 1985년도 총회는 이 단락을 텍스트에서 빼내어 각주에 삽입하였다.

제 37 조: 마지막 심판

마지막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우리 주님께서 작정하신 시간이 되어서
(피조물은 누구도 그 시간은 모른다)
구원되기로 작정된 수가 차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것처럼
하늘로부터
모든 위대한 영광과 위엄을 가지시고
그의 몸의 모습으로 우리가 볼 수 있도록
자신을 모든 산 자와 죽은 자들의 심판주로 공포하면서
오실 것을 믿는다.
오셔서 그리스도는 이 옛 세상을 불과 화염으로
정결케 하실 것이다.
그 때에 모든 사람은,
남자와 여자, 아이할 것 없이
세상의 처음부터 그 때까지 살았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의 보좌 앞에 대면하여 서게 된다.
그 때에 모든 사람들은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부름을 받을 것이다.81
그 이전에 죽었던 모든 사람들이
무덤으로부터 일어나서
그들의 영혼이 이전에 살았던
그들의 몸과 연결되고 연합하게 될 것이다.
그 때에 살아있던 사람들은
그전에 사람들이 죽는 것처럼 죽지 아니하고
“순식간에…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으로 변화할 것이다.82
그 때에 양심이라는 책들이 펼쳐져서
선이건 악이건
죽은 자들이 이 세상에 살아있을 때에 한 일들을 따라서83
심판을 받을 것이다.
진실로 모든 사람들이
세상 문화에서 농담으로 여기면서
사사로이 뱉었던 모든 말들에 대하여 설명을 해야 할 것이다.84
그리고 그 때에 모든 사람들의 비밀과 위선들이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만천하에 공개될 것이다.
그러므로 악한 자들과 불신자들에게
이 심판이 두렵고 무서운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성도들, 선택된 자들에게는
그것으로 그들의 구원이 완전하게 성취되기 때문에
그 심판이 매우 반가운 일이고 커다란 위로가 된다.
그 때에 이르러 성도들은 그들의 수고와
겪은 고난들의 결실을 받을 것이며,
그들의 순전함이 만천하에 드러날 것이며,
그들을 세상에서 박해하고, 억압하고, 괴롭혔던 악한 자들에
하나님께서 무서운 형벌을 내리시는 것을 볼 것이다.
불의한 자들은 자신들의 양심의 가책을 인하여
기소될 것이며,
다시는 죽지않고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서85
영원토록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와 반대로, 의로운 자들, 곧 선택된 성도들은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받아 쓰게 된다.
하나님의 아들은 그의 성부 하나님과 모든 거룩한 천사들 앞에서
성도들의 이름을 인정할 것이다.86
그 때에 성도들의 모든 눈물이 씻겨질 것이며87
그리고 현재 세상의 많은 재판관과 관리들에 의해서
악한 이단으로 정죄되는 그 일들이
사실은 하나님의 아들의 일임이 밝혀질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능히 상상할 수 없는 영광을
주님께서 은혜로우신 보상으로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충만하게 누릴 수 있는
그 위대한 날이 오기를 우리는 간절히 기다린다.
81 데살로니가전서 4:16
82 고린도전서 15:51-53
83 요한계시록 20:12
84 마태복음 12:36
85 마태복음 25:41
86 마태복음 10:32
87 요한계시록 7:17

이 본문은 2011년 북미주 개혁교회 총회에서 승인한 영어 번역의 한글판이다. Translation © 2011, Faith Alive Christian Resources. The English translation was approved by Synod 2011 of the Christian Reformed Church in North America and by General Synod 2011 of the Reformed Church in Amer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