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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 뷰캐넌은 죄수에서 위임 목사가 되었습니다.

코리 뷰캐넌은 마약과 갱단 활동으로 절정에 달한 17살에 경찰관을 죽이려다 미수에 그쳤습니다. 재판을 기다리는 동안 뷰캐넌은 감옥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 없이 살던 삶이 중단되었습니다. 15년이 지난 지금, 그의 열정적인 사역을 통해 목회자, 교회, 교도소, 지역사회가 계속해서 같은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뷰캐넌은 현재 일리노이주 사우스 홀랜드에 있는 퍼스트 리폼드 교회에서 위임 목사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뷰캐넌은 그곳에서 감독하는 정의와 자비 사역 외에도 미래가 불투명했던 10대 시절 교도소에서 그에게 손을 내밀어준 시카고랜드 교도소 아웃리치(CPO)의 목사이자 부총무이사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뷰캐넌은 "제 이야기 중 하나는 성경이 없는 가정에서 자랐다는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교회에 가지 않았고, 마치 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제 삶에 나타나셔야 했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렇게 하셨죠. 하지만 사탄도 나타났죠."

18살에 감옥에 갇힌 후 1년 동안 다른 수감자들의 고군분투를 지켜본 뷰캐넌은 자신의 삶이 훨씬 더 나빠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상한 마음을 안고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제 삶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기도했습니다. 제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그분이 저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제 삶을 어떻게 형성하시길 원하시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로 뷰캐넌은 법이 그의 범죄에 대해 요구한 형량(최대 80년)을 받지 못했습니다. 대신 그는 6년형을 선고받고 3년 만에 가석방으로 풀려났습니다. 출소 후 그는 청소년 디렉터가 된 후 무디 성경 연구소에서 성경 강해와 목회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그는 CPO의 군목으로 일하게 되었고, 무디에서 4학년이 되었을 때 CPO와 함께 일하던 퍼스트 리폼드 교회의 담임 목사인 매트 워터스톤의 요청으로 인턴십을 하게 되었습니다. 뷰캐넌과 워터스톤은 6년이 지난 지금도 함께 사역하고 있습니다.

워터스톤은 "교인들은 코리와 사랑에 빠졌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다인종, 다세대 교회가 되기 위한 우리 교회의 노력에 초석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는 80세 할머니, 55세 은행원, 45세 철공소 노동자, 35세 간호사, 방황하는 청소년, 전과자 등 피부색이나 나이, 학력에 관계없이 그 사이의 모든 사람들과 진정으로 공감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목회자는 친분이 두터우며 서로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고백합니다. 두 사람 모두 다인종, 다세대 사역의 어려움을 인정하고 함께 그 문제를 해결해 왔습니다. 워터스톤은 뷰캐넌의 인턴십, 초기 사역, 위임 목사 과정을 통해 그를 멘토링했고, 뷰캐넌 역시 워터스톤을 멘토링했으며, 워터스톤은 현재 최대 보안 교도소에서 예배를 인도하는 등 자신이 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워터스톤은 "그는 다양성에 대한 두려움을 덜어주고, 선교적 도전을 주었으며, 전도를 위한 노력에 힘을 실어주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뷰캐넌은 다문화 사역을 결혼과 비교합니다.

"성경은 교회와 결혼 사이에 상관관계를 제시하고 있습니다."라고 그는 말합니다. "어느 정도 타협과 주고받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서로를 알아가고, 필요를 알고, 충족시키고, 적응할 준비를 하는 데 있어 정의롭지 못합니다. 그것이 힘든 일이고 우리가 그것을 알아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일입니다."라고 말합니다.

뷰캐넌은 최근 자신의 소명을 실천하기 위해 더 거친 동네로 이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쉬는 시간에 거리를 걸으며 기도하고 관계를 구축합니다.

"편안해지기 쉬운데, 저를 도전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문화와 공동체, 보편적인 교회를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불편한 곳으로 밀어 넣으신다는 것에 도전을 느낍니다. 제 도전은 작은 삶의 영역에서 너무 편안해져서 더 큰 그림을 잊어버리지 않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