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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 그랜버그-마이클슨은 패터슨이 어떻게 RCA가 인종 차별이 없는 다문화의 미래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왔는지 회고합니다.

RCA에서 인종/민족 다양성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교단의 인종 치유 노력을 도왔던 올리버 패터슨 박사가 4월 30일에 별세했습니다. 패터슨은 인종 및 민족 위원회의 창립 멤버였습니다. 또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흑인 위원회 등 여러 다른 위원회와 위원회에서도 RCA를 위해 봉사했습니다. 패터슨은 뉴욕 퀸즈 빌리지에 있는 퀸즈 개혁교회의 장로이자 교인이었습니다.

웨스 그랜버그-마이클슨 명예 사무총장은 패터슨과 함께 RCA를 섬기며 그의 삶과 사역을 기리는 이 헌사를 바쳤습니다:

올리버 패터슨은 하나님의 정의와 화해에 대한 확고한 증인으로서 RCA에서 의의 떡갈나무처럼 우뚝 섰습니다. 올리버는 항상 인종적 불의에 대해 진실을 말했지만, 장벽이 아닌 다리를 놓기 위해 손을 내미는 환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는 미국 개혁교회가 과거의 인종 차별의 죄를 회개하고, 현재의 지속적인 실패에 대해 정직하며, 희망찬 미래에 대해 소망을 품을 수 있는 날을 갈망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를 위해 은혜와 확신을 가지고 일했습니다.

올리버와 함께 봉사하는 것은 언제나 기쁨이었습니다. 1999년 인종과 민족 위원회(CORE)가 인종적 치유라는 도전에 대한 구조적 대응책으로 설립되었을 때 올리버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 앞장서서 노력했습니다. 그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코커스에서 리더십을 발휘했으며 RCA의 여러 이사회에서 활동했습니다. 총회에서 연설할 때마다, 보고를 하든 마이크를 잡든 그는 명료하고 예언적인 통찰력과 건설적인 도전의 말을 건넸습니다.

올리버와 저는 2004년에 세계개혁교회연맹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가나의 아크라를 방문했습니다. 당시 우리는 노예들이 대서양을 건너는 위험한 여정을 떠날 때까지 갇혀 있던 노예 성이 있는 가나의 케이프 코스트를 방문했습니다. 진실은 따끔했습니다. 하지만 RCA가 벨하 신앙고백을 채택하는 등 올리버의 꿈이 현실이 되는 등 그의 사역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올리버 패터슨의 용기 있는 증언과 따뜻한 마음을 깊이 그리워할 것입니다. 그는 RCA가 복음에 더욱 충실하도록 이끌었고, 그의 삶과 증거에 대해 하나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